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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여행

2020년 봄풍경. 겹벚꽃이 아름다웠던 철산 주공 8단지

 

 

 

 

 

 

 

 

 

 

 

 

사람 붐비는 축제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매년 봄. 

나만의 벚꽃 명소는 철산 주공 8단지였다.

이유는 정말 많은데 가장 좋았던 것은 벚꽃이 활짝 피기 전,

파란 빨간색으로 엮인 등불을 벚나무에 달아놓은 후

밤이 몰려오면 은은하게 빛나는 조명과 벚꽃이 정말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다른 곳들은 너무 환하고 못생긴 인공조명을 벚꽃에 쏘아 올렸는데,

난 이곳의 은은한 벚꽃놀이를 정말 좋아한다.

 

 

2020년 봄은 코로나 19로 맞이했고, 먼 곳을 다닐 수 없기에

철산 주공 8단지를 다니면서 반나절 시간을 보냈다.

내가 없는 동안 이곳이 벚꽃, 겹벚꽃 명소로 유명해졌는지

엄청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서 놀랐다.

하지만 이곳의 풍경이 그만큼 아름답다는 뜻이기도 하니,

나도 바람에 타고 흐르듯 떨어지는 벚꽃 잎처럼 유유히 걸으며 이곳을 담았다.

 

 

 

 

 

 

 

 

 

철산 주공 8단지는 겹벚꽃 말고도 다양한 구역에서

정말 아름답게 핀 봄꽃을 볼 수 있어서 좋아한다.

간단하게 예를 들자면, 아주 맛이 뛰어나고 인테리어도 훌륭한 레스토랑이

알고 보니 무한리필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딱 그 기분이라고 할까나?

 

주공 8단지 입구에서 일직선으로  쭉 바라보면,

활짝 핀 겹벚꽃과 삼각형 주황 지붕이 포개져서 정말 아름다운 봄 풍경을 만들어낸다.

 

 

 

 

 

 

 

 

다양한 색상의 봄꽃들.

뒤섞인 모양이 마치 기쁘게 춤추는 것만 같았다.

 

 

 

 

 

사람들이 몰리지 않는 곳도 매력이 넘친다.

중간중간 마음 편히 걷다 보면,

이렇게 동물 친구들도 경계를 낮추고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포착할 수 있다.

많은 동식물들도 이곳이 아름답고 편안한 건지 알 수 있었다.

 

 

 

 

 

 

 

 

 

 

 

커다란 바위가 덩그러니 있는 겹벚나무 구역은

골목이 좁고 건물이 낮은 터라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장소다.

마침 겹벚꽃 맞은편. 철쭉. 이름 모를 하얀색 봄꽃이 잔뜩 부풀어 올라

정말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나는 한참 벚나무를 바라보며, 바람 불기를 기다린다.

겹벚꽃이 한창 피어오른 시기가 지나면 살짝 스치듯 불어오는 바람에

함박눈 내리듯 마구 떨어지는 벚꽃잎을 볼 수 있다.

너무 아름다웠다.

 

 

 

 

 

 

개인적으로 떨어진 벚꽃잎을 더 좋아한다.

봄에만 허락되는 눈 같아서.

떨어진 벚꽃잎은 주공 8단지 주변에도 정말 많이 볼 수 있다.

바람이 불면 얼른 고개를 숙여 벚꽃잎이 움직이는 것을 구경한다.

그렇게 쭉쭉 걷다 보면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이 보인다.

문이 없는 화장실 옆에는 빈 공터와 저 멀리 겹벚나무길이 펼쳐져 있었다.

 

 

 

 

 

가장 인기가 좋은 곳 중 하나인  807동 구역 겹벚나무.

앞쪽, 옆쪽 모두 너무 매력적인 곳이다.

축 늘어진 가지들이 감싸 안는 꽃터널로 만들어서

많은 커플과 가족, 친구들이 사진 찍기 위해 한참 동안 기다린다.

그 뒤편 샛길로 걸어가면 잔디에 떨어진 겹벚꽃 잎이 볼 수 있다.

 

 

 

 

 

 

 

 

 

 

 

 

 

 

 

 

오후 3시가 가까워지는 시간.

 

 

한국은 유럽에 비해 햇빛이 정말 강렬한 것 같다.

봄인데도 너무 눈부셔서 폰을 보면 화면에 뭐가 떠있는지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

오후 3시인데도 이렇게나 햇살이 강하다니-

평생 겪어왔지만, 지금은 영... 어색하다.

적응하는 시간 동안 그동안 익숙해진 것들과

멀어진 무언가를 뒤적뒤적하는 시간을 다시 쌓고 있다.

 

 

 

 

 

 

 

 

이리저리 딴짓을 하며 산책을 한다.

철산 주공 8단지 주민분들이 이곳을 너무 잘 가꿔놓았기 때문에

곳곳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보다 보면 시간이 어느새 훌쩍 흘러갔다.

 

 

 

 

 

 

 

 

 

고등어 무늬 길고양이가 지내는 구역의 봄꽃 풍경.

 

고양이가 지내는 구역마다 볼거리가 다양하다.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곳이 식상하다고 느껴지면,

저 멀리 고양이가 다니는 길을 따라가 본다.

그러면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상은의 비밀의 화원이 떠올랐던 곳.

위치는 기억나질 않지만, 그때 느꼈던 기쁨은 여전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사는 고등어 무늬 고양이가 내심 부러웠다.

 

 

 

 

 

 

 

 

붉은빛이 정말 아름다운 철쭉

 

 

 

 

 

 

 

이 꽃 이름 알고 싶어서 엄청 찾아봤는데 아직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치즈 길고양이!

나이가 좀 먹은 수컷 고양이 같았다.

나를 보고도 여유롭게 자기 할 일을 하는 모습에

덩달아 나른해지고 기분도 좋아진다.

 

 

 

 

 

 

치즈 길고양이가 자주 지나다니는 작은 골목.

땅에 자란 풀색이 아직 많이 여리다.

 

 

 

 

 

 

조화지만 햇빛에 날아간 색감이 아름다웠다.

치즈 고양이는 여기서부터 사라졌다.

넉넉한 발걸음을 가진 치즈 고양이가 지나친 풍경에서

고양이의 나른함에 대한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조금 낮지만 3층 이상인 주공 아파트 단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곳도 참 좋아한다.

아파트 사이사이 삐쭉 쏟아 오른 나무도 좋아하고,

푸른 들판이 떠오르는 평온함도 너무 좋다.

그렇게 단숨에 걷다 보면 컷 만화처럼-각기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

한 아파트를 지나쳤더니, 보라색 들꽃이 펼쳐진 곳에 사진 찍는 사람들이 있었고.

한 블록 다시 넘어가니 아래 사진과 같이 비둘기 떼가 구구구 소리를 내며

땅을 쪼아대고 있었다.

 

 

 

 

 

 

 

 

 

 

 

 

 

 

 

비둘기가 시간을 보내는 곳.

 

 

 

 

 

 

 

 

 

 

 

 

 

 

 

 

 

 

 

 

 

 

 

내가 자주 걸으며 사진 찍는 아파트 벽.

시간마다 색감도 다르고 그림자도 미묘하게 달라진다.

방향을 틀어서 좀 더 높은 아파트가 있는 곳을 가다 보면 색감이 알록달록한 놀이터가 나온다.

 

 

 

 

 

 

 

 

 

 

 

 

 

어린이가 없는 놀이터

 

 

그 옆 벤치에는 나이 지긋한 동네 주민분들이

노래를 부르며 하하호호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철산 주공 8단지 사이에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있다.

그 도로를 중심으로 반대편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등나무 벤치 뒤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유채꽃 길이 펼쳐진다.

좁은 유채꽃 골목길 맞은편에는 테니스를 칠 수 있는 장소가 있는데,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쿵 쾅! 쿵 쿵 쿵 탕!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경주 평지에 엄청난 규모로 심어진 유채꽃구경도 참 좋아하지만,

사람이 만든 아름다운 건축물 사이에 활짝 핀 유채꽃도 정말로 아름답다.

까치 두 마리는 갑자기 땅에 내려와서 무언갈 찾고 있다.

 

 

 

 

 

 

 

 

 

 

 

 

 

 

 

 

 

 

 

 

 

 

 

 

사람들이 만든 봄 풍경

 

대롱대롱 훌라후프

붉은 고무 물통에 빠진 형광 초록색 호스

그 위에 벚꽃잎이 너무 귀엽다.

 

 

 

 

 

 

 

 

 

유럽이 생각났다.

 

 

한 바퀴 다시 돌아서 계속 올라갔다.

아까 지나쳤던 골목으로 다시 들어간다.

이미 떨어지고 사라진 벚꽃잎이 바닥이 나뒹굴고 있었다.

 

 

 

 

 

 

 

하루 중 반나절만에 다 둘러보고 기록하기에는 너무 짧았다.

그래도 곧 오는 여름엔 능소화가 활짝 피기 때문에

2020년 아쉽게 지나간 봄을 가벼운 마음으로 보내주자.

철산 주공 8단지의 사계절이 정말 아름답다.

그래서 다가오는 계절이 기대되는 이유는

바로 이곳의 다양하고 섬세한 계절의 변화를 보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후 4시 조금 넘긴 시각.

땅에 떨어진 겹벚꽃 잎.

도로가와 가깝지만 좁은 골목에 멋들어지게 핀 겹벚꽃과 라일락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오후 여섯 시가 가까워질 때쯤.

햇살이 땅에 있는 식물들과 점점 맞닿는다.

도로가 한쪽에 심어있는 대나무 잎에는 빛이 아름답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대나무는 사시사철 푸르지만 분명 봄의 대나무 빛깔이 있다.

 

 

 

 

 

 

 

 

 

 

붕 떠있는 것과 떨어져 있는 것의 차이.

 

 

 

 

 

공기가 제법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아까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냥 지나쳤던 겹벚나무 길이 떠올라서

빨리 걸어가서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해는 느리게 저물었다.

눈부셨던 햇빛은 잠깐 딴짓하면,

어디로 갔는지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빛이 사라져 있었다. 

 

 

 

 

 

 

 

 

이제 다시 처음에 왔던 주공 아파트 입구로 곧장 걸어간다.

낮에는 활기차 보였던 봄꽃들이 어두운 색감의 옷으로 갈아입으면서

점점 소리가 사라졌다. 밤의 냄새도 함께 흘러나온다.

아파트 등은 하나둘 빛을 내기 시작했다.

 

 

 

 

 

 

 

 

곧 다가오는 가을이면 철산 주공 8단지는 재개발로 영영 사라진다.

서울과 수도권은 점점 낮은 곳을 찾기 어렵다.

그게 너무 슬프다.

조금 낮은 건축물 사이로 흘러가는 비행기와 하늘 풍경을

보는 게 점점 어려워진다는 게-

8단지 맞은편은 2년 전부터 재개발을 위한 공사가 한참 진행 중이다.

 

이곳은 사진으로 담아낼 수 없는 여유와 싱그러움이 가득한 곳이다.

4계절마다 제각기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는 다음 계절이 기대되는 한 편. 아쉬움도 점점 커져만 간다.

우리는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들고 가꾸면서 오랫동안 그 자리에 머물게 할 수 없는 걸까?

 

철산 주공 8단지는 저절로 아름다운 곳이 아니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 경비원과 관리자들이 있었기에

많은 시간 동안 무럭무럭 자란 식물들이 4계절 내내 아름다운 풍경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동안 멋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모습을 너그럽게 보여준 주민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 인사를 전한다.

 

 

 

 

 

 

 

인스타그램 @imsuperstar_